- 이부시마

- 입심 리레 5차

- 1 빠 당 !!!!!!!!!!!!!!!!!!!!!!!!!!!!!!

- 노래가 너무 좋아서 텐션 아갓테킷타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부키가 윗집으로 이사왔다. 이번 관사 추첨이 안됐다던가. 이사갈 집을 꽤 오래 고르는 것 같더니 타이밍 좋게 방이 빠진 우리집 위로 이사와버렸다. 멘션 가격이 그렇게 싸지는 않았을텐데. 뭐 이부키의 지갑 사정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생각해봤자 시간만 아까웠으므로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부키가 윗집으로 이사오면, 출퇴근 시간에도 좀 더 붙어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침 저녁으로 우연히 마주친다든가. 출퇴근 길이 겹친다든가.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마주친다든가. 저녁을 함께 먹는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크흠….”

새삼스럽게 음흉하네. 시마 카즈미. 혼자 있는데도 헛기침을 했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보고 싶은게 당연하잖아. 서른 후반의 연애는 고등학생의 그것이 아닌데도 머릿속에서 이부키 아이가 뛰어다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아마 이부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게 분명했다. 첫 날부터 초콜렛과 수건을 사와서는 벨을 눌러댔다.

“시마! 이제 우리 이웃이야!”

야쿠자마냥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색 민소매를 입은 녀석이 천사처럼 활짝 웃는게 기꺼웠다. 나도 모르게 문을 벌컥 열어주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부키는 집으로 들어와 식탁 위에 초콜렛과 수건을 놓더니 이미 몇 번이나 와본 집 안을 이리저리 날듯이 뛰어다녔다.

“뛰지마.”

조카에게 말하듯 이야기 하곤 현관 문을 닫았다. 보리차를 꺼내고 조금 고민하다 냉장고 한켠에 있던 수박도 꺼내 잘랐다. 사실 이부키가 오지 않았다면 수박을 들고 올라가려고 했었다. 혼자서는 다 못 먹는다는 핑계로 그 집의 첫 손님이 되고 싶었다… 진정하고 그만 음흉하도록 하자. 수박을 반으로 쪼개고 나머지 반쪽에 랩을 씌우는 사이, 이부키가 식탁에 깔린 식탁보를 뒤집어보고 식탁에 얹힌 물컵을 뒤적거렸다.

“관사는 엄밀히 말하면 내 집이 아니잖아. 내 집을 가지는 건 처음이야. 게다가 동네도 좋고 집도 넓어. 뭐 부터 해야돼? 시마는 자취 선배니까 알려줘.”

“그냥… 관사에 있는 물건 옮겨왔으면 된 거 아냐?”

“재미없네- 시마는 자기 집을 가지면 하고 싶었던 거 없었어? 밤새 노래 틀어놓고 놀기?”

“그건 자기 집이든 남의 집이든 주택가에서 하면 안되는 행동이고.”

이부키가 들떠선 평소보다 시덥잖은 소리를 했다. 대꾸하며 수박을 자른다. 평소처럼 자르려다가 왠지 그렇게 하고 싶어서, 부엌 서랍장에서 아이스크림 스쿱을 꺼내 수박을 동그랗게 파냈다. 이부키가 쪼르르 달려와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올렸다. 귓가에 감탄사가 울린다.

“우와- 그거 뭐야?”

“이런 거 있으면 애들이 좋아해.”

“우리 애들이야?”

킬킬거리며 이부키가 귓가와 뺨에 입을 맞춰왔다. 대낮부터 뭐 하는거야.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하며 허리춤에 감긴 팔을 떼어냈다. 성의있게 힘을 줘서 떼어낸 것이 아니어서인지 이부키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시마. 수박은 나중에 먹고…. 은근한 목소리로 선동하는게 제법 야살스러웠으나 무시하고 수박을 퍽퍽 파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짐은 다 풀었어?”

“매정해. 응. 다 풀었어.”

이부키가 아쉽다는 듯 귓가를 깨물곤 떨어졌다. 동그란 접시에 동그랗게 파낸 수박을 담아 식탁 위에 놓고 선물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부키가 가져온 수건은 세탁실로, 초콜렛은 냉장고로 들어갔다. 이부키는 그 사이에 식탁에 앉아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꼬리가 살랑거렸다. 귀여워. 아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습관적으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 그만둬. 멈춰.

“시마도 우리집 놀러와. 언제든지 와도 돼.”

“연락 하고 갈거야. 언제든지 놀러가는 건 실례잖아.”

“시마라면 그래도 돼. 번호 알려줄게.”

이부키가 히죽히죽 웃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티셔츠 넥라인에 꽂으며 팔짱을 낀 채 식탁위로 몸을 기울인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이부키의 갈색 눈동자가 거실 등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얼굴도 잘생긴 것 같다. 이부키가 뜸을 들이는 통에 나도 모르게 몸이 기울었다.

“비밀번호는 시마 생일이야.”

“뭐…….”

그런 거, 너무 연인 사이에 하는 것 같잖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법한 말을 겨우 눌러 참았다. 그렇게 티내고 다니지 말라고. 흘리고 다니지 마. 우리 사귄다고 광고 하지 마. 그런데 잔소리를 눌러 참고 참은 다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가관이었다.

“자고가.”

시마 카즈미. 인생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게 분명하다.

윗집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실 멘션은 방음이 잘 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부키가 이사온다고 해서 그 부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밤이 되면 위층의 소리가 아래로 내려와서 종종 생활 소음이 들리는 편이었는데 이부키의 집에서는 그런 소리가 일절 나지를 않았다. 첫 날엔 가볍게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나 이따금 가구를 옮기는 소리가 나기는 했었다. 그런데 삼 일이 지나자 밤이 되면 이부키의 집은 조용해졌다. 대략 9시에서 10시 사이면 마치 집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조용해진다. 소리가 나지 않자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 뭐해?

괜히 라임으로 메시지를 보내본다. 대답이 없었다. 진짜로 집에 없나? 자나? 친구를 만나러 나갔나? 그럴 수도 있지.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인사하는 귀여운 상상은 생각보다 실현되질 않았다. 이부키가 이사온 건 관사에서 떨어졌기 때문이고, 나랑 그러려고 이사온 거라고 말한 것도 아니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밤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이부키는 이상했다. 집에서는 조용한 타입인가? 라임 메시지를 받지 않는 것도 수상하다. 낮에는 이상하지 않았고… 아침이 되면 라임에도 답장이 왔다.

‘미안, 잠들었어!’

이부키는 성실한 편이고 아침엔 런닝을 하러 일찍 일어나니까 그 시간에 자고 있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이르지 않나?

결국 이부키가 이사온지 3주째 되는 날, 나는 이부키를 불시에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냥 걔가 뭐 불순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수상하니까. 이부키가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오후 아홉 시. 착한 어른은 잠들 시간이다. 그리고 이부키의 집이 조용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평범하게 잠옷에 카디건을 챙겨입었다. 손에는 이부키가 사왔던 초콜렛과 맥주를 들었다. 만약 자고 있으면 얼굴만 보고 나오자. 집에 아무도 없으면 그냥 오고, 깨어 있으면 맥주 한 캔 할래? 하고 물어보는 거야. 그 정도는 자연스럽다.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복도식 아파트라 개방된 바깥에서 미지근한 공기가 불어와 뺨에 들러붙었다. 애인 사이에 같은 아파트 사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대답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다음 층으로 올라와 이부키가 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보면 안되는 걸 봐버렸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앗, 시마!?”

이부키 아이가 복도의 콘크리트 난간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수상한 복장을 하고.